새로운 창조에는 반드시 분석(分析)이 앞서기 마련입니다.분석은 어떤 의미로는 파괴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가령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 낼 때,자동차 회사는 경쟁 상대의 우수한 차를 구입해서 그것을 완전히 하나 하나 해체시켜 놓습니다.
어린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부수는 것은 창조 본능의 발로입니다.물론 충동적인 파괴 본능은 어린이 특성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그 파괴 본능의 내면 세계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고 거기에서 무엇을 구하는 창조력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깨끗이 가꾼 정원을 더럽히거나,깨끗한 벽이나 미닫이에 흠집을 내거나 낙서를 하는 행동도 파괴 본능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나,그 이면에 새로운 순수한 인간으로서 기성 질서에 대한 반역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문명이나 역사가 늘 바뀌고 진보해 나가는 것은 인간의 기성 질서에 대한 반역과 파괴 본능을 바탕으로 한 창조성에 의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부모는 말할 나위도 없이 어린이 이전의 세대의 사람인 동시에 기성 질서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인간밖에 안됩니다.그리고 어린이는 그것을 부수어 부모를 능가함으로써 인간 전체를 진보시켜 나갑니다.
어린이의 충동 본능을 강력히 억제하는 것은 결국에 가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발육 발전을 억제하는 일이 됩니다.어린이가 물건을 부수고 더럽히는 것을 너무 억제하는 일은 인간의 순수한 원형인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우지 못하는 게 됩니다.새로 사 준 장난감을 부수지도 않고 언제나 깨끗이 간수하는 어린이는 이미 어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놀랄 만큼 성장한 아이어른밖에 안됩니다.
옷을 더럽히고 찢기고 오면 자녀들을 몹시 꾸짖는 어머니를 가끔 보지만,이러한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어린이에게 입힌 옷은 자기 허영의 겉치장에 불과합니다.어린이에게 있어서 그렇게 입힌 옷은 실은 귀찮은 존재밖에 되지 않습니다.어린 시절에 나보다도 아주 씩씩했던 동생이 어느 날 바지가 해져서 구멍이 났을 때,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그렇다면 아무리 더럽히고 찢어져도 좋은 바지를 입혀 달라고 항의를 하던 것을 나는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창 자라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도 자기 엄마의 손이 가서 이중 삼중으로 덧댄 옷을 불과 하루도 못가서 구멍을 내고 맙니다.그 구멍이나 실밥 속에서 어린이의 새로운 싹이 터 나오는 것입니다.
어린이에게 입히는 옷은 맵시로나 질적으로 어린이들의 분방한 기능을 조금이라도 억제해서는 안됩니다.어린이는 친구들이 입고 있는 아무리 진기하고 조악한 옷일지라도 진기하다고는 할지언정 어른이 가르쳐 주지만 않는다면 그것을 경멸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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