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치마처럼 보이는 남성들의 옷인 스코틀랜드의 킬트(Kilt)는 여러 가지 목적의 쓸모있는 의상으로써 창안되었습니다.원래 킬트는 5피트의 폭에 약 15피트의 길이로 되어 필라백(philabeg) 이라는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조각을 세로로 접어서 허리둘레를 감싼 후 끈으로 묶었습니다.천의 나머지는 한쪽 어깨 위에 걸치고 핀으로 고정시켰습니다.이 치마 같은 복장을 함으로써 고지대의 남성들은 거친 지형을 횡단하는 동안 그들의 수족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창안물은 빈곤과 모직물의 부족에서 온 결과였습니다.옛 킬트는 매우 다양한 용도로 쓰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혹독한 날씨에서는 이것으로 머리와 어깨를 덮었고,집 밖에서 잘 때에는 담요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킬트를 치마라고 여기지만,여성들은 결코 킬트를 입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스코틀랜드인은 그들의 킬트를 입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킬트는 무릎 길이의 주름치마와 같고,여기에 따로 분리된 체크무늬의 어깨걸이 또는 담요 같은 망토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브로치로 고정시킵니다.킬트는 7야드(6.4m) 길이의 모직이고,어깨걸이는 4야드(3.66m)길이 입니다.
킬트는 무릎의 중앙 아래로는 절대 입지 않습니다.경축의 기장(regalia)과 함께 지갑처럼 생긴 주머니가 하나 있는데,이것은 스퍼런(역주:스코틀랜드 고지인들이 킬트 앞에 차고 다니는 가죽 주머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킬트에는 주머니가 없음)
또한 스퍼런을 사용하는 데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세련된 스코틀랜드인은 낮에는 이 가죽 주머니를 차지 않으나 저녁에는 가죽 주머니를 찹니다.
일종의 재킷인 더블릿(역주:몸에 꼭 끼는 재킷 모양의 옷)을 포함한 기타의 복장으로써,보닛(역주:챙 없는 남자용 모자),브로그(역주:생가죽으로 만든 투박한 신발),그리고 무릎 높이까지 오는 스타킹이 있습니다.
완벽한 조화를 위해 장식용 핀을 꽃는데,이는 킬트가 벌어지면 속옷 또는 맨살이 드러남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한때 전쟁에서 킬트 차림을 한 스코틀랜드 군인들처럼 양말 속에 칼을 꽂는 킬트 복장 차림이 유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복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물론,체크 무늬의 모직물인 타탄형(역주:바둑판 무늬가 있는 직물)의상 형태입니다.
모직물의 줄무늬와 색상의 다양한 다지인이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일족마다 다양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모든 골짜기들은 주위에 둘러싸인 산으로 서로 각기 고립되었고,고립된 지역마다 각 거주민들은 한 일족으로 구분되어 각긱 자신들의 'sett' 또는 타탄의 유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타탄은 120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면 아일랜드인과 유럽의 켈트족도 이 타탄을 입었습니다.대영제국은 1745년 지코바이트(Jacobite:제임스2세를 옹립하려던 반란) 대반란 이후로 스코틀랜드에서 타탄과 킬트 복장을 금지시켰습니다.
타탄의 많은 유형들은 1782년 금지령이 해제되기까지 상실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군인들에겐 그들의 타탄 복장을 허용했고,이것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습니다.현재 스코틀랜드의 후예들은 전세계 각지에서 행진이나 결혼식 그리고 민족적 축하 행사장에서 고지대의 의상을 입고 옛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스코틀랜드인에게 진정한 남자로서 스커트,브로치,가죽핸드백(주머니)차림을 하는 것이 위엄있는 일인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모직 킬트 안에 그들은 속옷을 입을까요?일반적으로 입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입는 사람 마음대로 입니다.최소한 그들은 자신들의 다리에 난 털을 깎지 않아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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